서운함을 예쁘게 말하는 방법 연애의 기록들

사실 어젯밤에 또 불안+조울증이 도져서 폰으로 길게 푸념글 썼었다가 뭔가 부끄러워서 임시저장해놨었는데..
사라졌네요 ㅋㅋㅋ 잘됐다 ㅋㅋㅋ 올렸으면 이불킥했겠지

어제 운동 끝나고
엊그제 J랑 갔던 중국음식점에서 잘못 주문했었던 내가 좋아하는 치킨메뉴를 사러 가기 위해 다시 갔다
그러면서 J한테도 뭐 테이크아웃 해줄까 싶어서 전화했는데 전화를 중간에 수신거부하더니 운동중이라고 문자가 온다
연애 극초반엔 운동하다가도 전화 받더니.. 물론 그때는 J가 자기집에 오라고 초대해서 내가 패닉한 상태여서 전화를 받았어야 했지만 ㅋㅋ
이젠 안받다니.. 여기서부터 쫌 속상했지만

무사히 테이크아웃해서 집가서 문자하는데 뭔가 자꾸 뚝뚝 끊기는거다
나: 나 내일 저녁부터 미술 수업 들어
(읽씹. 한시간 뒤)
나: 목요일에 옷 따뜻하게 입구오래
J: (칼답) 실내에서 하는거 아냐?
나: 맞는데 어쩌구저쩌구~
(읽씹)

근데 여기서 갑자기 깨달았다
J는 2달 가까이 나한테 단 한.번.도. 전화한적이 없다
단 한번도.
그생각을 하니까 좀 짜증이 나서
나: 근데 너 나한테 지금까지 한번도 전화 안한거 알아?
J: 어.. 몰라
짜증이 났지만 
나: 1년 안에는 전화할거지? ㅋㅋㅋㅋㅋ
(읽씹)
조크로 넘겼는데도 또 읽씹하니 짜증
이랬더니 또 막 온갖 서운한게 다 몰려오는거다

전화 안한것도 서운하고
문자하다 자꾸 읽씹하는것도 서운하고
밥먹으면서 대화 안하는것도 서운하고
심지어 밥먹으며 폰 보기 시작한건 더 서운하고
데이트도 요즘 내가 만나자해야 만나는것도 서운하고 (근데 이건 또 생각해보니 J도 연애초엔 나한테 만나자고 데이트 리드 많이 했고 일요일도 먼저 만나자고 제안했던건데 내가 토요일로 땡긴거니 이건 패스)
그래서 문자로 babe 했다가 아니라고 그냥 자라고 하고는
서운해서 이글루에 글 쓰며 감정정리좀 하다가..
안자면 얘기좀 해도돼? 하고 문자 보냈는데 답이 없길래 자러 가려니까 전화가 왔다
역사상 첫 J의 전화였는데 못봤다..ㅋㅋㅋ하하
그래서 다시 전화했는데 전화 받자마자 울음이 터졌다

J: 자려는데 잠이 안와서 폰 보니까 너가 문자해놨길래 전화했어, 무슨일이야? 섭섭해?
(이미 울음 폭발)
나: 으아아아아앙ㅇㅇㅇㅇㅇ 유ㅠㅠㅠㅠㅠ으으응ㅇ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J: 왜그래왜그래, 내가 전화 안하는게 그렇게 서운했어?
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응 너무 서운해
J: 난 진짜 전화하는걸 싫어해, 문자만 하고 살아왔고. 진짜 너한테만 안하는게 아니라 그냥 안해. 그렇다고 너랑 전화하는게 싫다는건 아니야. 지금도 이렇게 서로 목소리 듣는것도 좋고. 너가 전화하면 받잖아. 앞으론 전화 자주 할게. 서운해하지마.
나: ㅠㅠㅠㅠㅠㅠㅠㅠㅠ너무너무 서운했어 이해하려고 노력했는데 어떻게 여자친구한테 두달가까이 전화를 한번도 안해? 거기다 난 전화가 더 좋아. 더 감정도 느낄수있고, 더 가깝잖아.
J: 진짜 몰랐어 내가 전화를 한번도 안한걸. 나는 너한테 하루에 문자 몇번씩 하는게 내 나름의 커뮤니케이션이고 노력이라고 생각했어. 또 어제도 봤으니 오늘같은날은 굳이 전화를 해야한다고 생각도 안했고. 앞으론 자주 하려고 노력할게.
나: ㅠㅠㅠㅠㅠㅠㅠㅠ됐어.. 그냥 한달에 한번은 전화해줘. 한달에 한번만이라도.
J: 그래 그럼 그렇게 할게. 나 자러갈게.
나: 어딜가 나 아직 할얘기 안끝났어
J: 더있어? 뭔데?
나: 나는 너가 나랑 얘기하는게 재미 없어하는거같아
J: 무슨소리야? 나 너랑 얘기하는거 좋아해. 같이 있는것도 좋아하고.
나: 알아. 근데 너 문자하다가 자꾸 사라지잖아.
J: 내가 언제? 너한테 최대한 문자 자주 하잖아.
나: 아까도 내가 보냈는데 답장안하고, 내가 딴얘기하니까 답장 바로 하더니 또 사라지고, 또 그랬잖아.
J: 가끔은 나도 뭐라 보낼지 생각해야할때도 있고, 나는 이 대화에 답을 안해도 된다고 생각해야 할 때가 있어.
나: 음... 음 알겠어. 나는 사실 너한테 답을 기대했거든. 안해도 되는 답들이긴 하지만. 알았어. 그건 우리의 생각 차이라고 하자. 그리고.. 평소엔 괜찮은데.. 가끔 이상할때가 있어. 예를 들면 어제도 우리 베이글 먹을때 너 말 한마디도 안하고 핸드폰을 보기 시작했잖아. 평소에 핸드폰 보는건 괜찮아. 근데 밥먹을때 폰 보는건 너가 아니라 다른사람이어도 나는 싫어. 나름대로 우리 데이트중인건데, 나에게 집중해줬으면 좋겠거든. 친구나 가족도 마찬가지야 (실제로 엄마가 바빠서 업무때문에 같이 있어도 폰 자주보고 베프도 나랑 있어도 폰을 자주봐서 좀 그런거에 예민해요. 저는 폰을 잘 안만지거든요). 나랑 있는데, 나랑 시간을 보내는데 왜 폰을 보는지 이해를 잘 못하겠어. 그래서 어제 먹을때 너가 아무말도 안해서 나는 막 아무말대잔치 했고. 근데 또 그다음에 반스앤노블 갔더니 또 괜찮아졌고. 그래서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잘 모르겠어.
J: 일단 핸드폰은 그냥, 내가 distract잘되서 그래. 아무래도 가족 채팅, 친구들 그룹채팅 이런거때문에 자꾸 진동이 오니까 핸드폰을 꺼내놓고, 그걸 보게 되서 그래. 몰랐어, 앞으론 주의할게. 그리고 난 너랑 대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 아 물론 내 말을 들어주긴 하지. 대답도 해주고. 근데 그냥.. 난 영혼 없는 대화를 하는 느낌이었어.
J: 몰랐어. 난 너랑 대화를 재밌게 하고있다고 생각했는데. 앞으론 더 engaging 하는 대화를 하려고 할게.
나: 웅.. 나한테 화났어?
J: 화난건 아니고 놀랐어. 이정도로 너가 속상해하는줄 몰랐어. 속상한게 있으면 바로바로 얘기해서 어른처럼 대화로 풀어야지, 이렇게 울면서 밤에 전화하는게 아니고. 앞으론 바로바로 얘기해줘. 나는 진짜 모르고 하는 행동들이고 너가 말 안해주면 나는 못고치고 계속 반복할거고 그럼 넌 더 속상해할거잖아. 나는 너가 이정도로 울면서 속상하면서 하나도 안속상한척 한게 되게 놀라워.
나: 말했듯이 너가 모르고 한 행동들이니까, 이해하려고 했어. 거기다 난 너의 좋아하는 점들이 훨씬 많은데, 이 작은 일들로 굳이 트집잡고싶지도 않았고. 내가 서운한 일이 있으면 너의 장점들을 생각하고 보통 그걸로 풀어졌는데, 오늘은 나도 생각보다 많이 서운했나봐, 나도 놀랐어. 나도 바로바로 말하려고 노력할게.
J: 그래,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자러 가자. 잘자.
나: 들어줘서 고마워. 잘자.

이 밑줄 친 두 부분 덕에 J랑 나는 싸우질 못할거같다.
J가 저 어른처럼 대화로 풀라고 하는 말에 전혀 비꼬거나 가르치려는 태도가 들어있지는 않았다.
그냥 또 충격.. 아 난 이미 감정조절 못하는 어린애로 비춰지겠구나. 그리고 이게 내 문제였구나.
사실 전남친 S랑도 이런식으로 싸움이 시작됐었다.
서운한게 있어도, 워낙 바쁜 사람이고 좋은 사람이니 내가 말을 안하고 참았고, 그 결과는 항상 폭발이었다.
그럼 또 S는 당황잼.. 얘가 괜찮다가 갑자기 울면서 막 뭐라 하니 당황스럽겠지.

나는 남 싫은 소리를 잘 못한다.
애초에 관계가 틀어졌거나 싫어하는 사람한텐 잘만 하는데,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에겐 불편해도 아쉬운 소리를 못한다.
그냥 내가 참고 말지 하고. 내가 너무 소심한거려니. 별거 아니려니 하고.
J랑은 특히 더, 사랑의 본질은 이해 라는 생각 때문에 더 참았다.
근데 오히려 참는게 더 독이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다는 말에도 충격받았다.
혼자 삐져서 짜증내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는데도, J는 나한테 말해줘서 고맙다고 한다.
나를 원망하지도 않고 혼내지도 않고, 그냥 간결하게 자기 입장을 설명하고, 나에게 다음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가이드라인을 주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한다.
그런 J를 위해 나도 서운함을 예쁘게 말하고 싶다.
현명하고 사랑스러운 여자가 되고싶다.
그래서 오늘부터 공부할 예정.ㅎㅎ
J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서운함을 예쁘게, 간결하게 말하는 법을 배우면 좋을거 같다.
쌓아두지 말아야지.

연애초기라 다 받아주는걸수도 있지만, 그래도 J의 이런 모습을 보니 나만 잘하면 크게 싸울 일은 없겠구나 싶다.
여러 책들에서 읽었던 내용인데 이제야 생각났다.
상대방은 나를 서운하게 할 의도가 없었다는 것.
그걸 바탕으로 현명하게 얘기하는 방법을 공부해봐야지.

J는 참 좋은 사람이다.
나도 그에 걸맞는 좋은 사람이 되고싶다. 
J를 만나서 참 다행이고 행복하다.

덧글

  • 2018/03/14 09:4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3/14 23:1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03/15 22:2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3/16 00:1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03/20 00:22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붕숭아 2018/03/20 01:26 #

    ...? 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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